웰다잉과 산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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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24-10-16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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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인 효원가족공원 상임이사

'웰다잉(Well-dying)'은 삶을 충실히 정리하고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품위와 존엄을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히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주변 사람들까지도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죽음은 인간의 삶에서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마지막 관문이며, 그 과정을 어떻게 준비하고 맞이하느냐에 따라 남겨진 이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장례는 이러한 죽음의 필연성을 받아들이고, 고인을 존엄하게 이승에서 저승으로 보내는 행위다. 동시에, 이는 남겨진 사람들에게 정신적 안정을 제공하는 중요한 의식이기도 하다. 장례는 상실(喪失)과 애도(哀悼)라는 두 가지 핵심적인 감정의 발현을 포함한다. 상실은 말 그대로 '잃어버림'이다. 물건, 기억, 감정의 잃어버림은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죽음을 통한 상실은 가장 고통스럽다. 이로 인해 상실감, 좌절감, 절망감,  그리움, 분노, 원망, 불안, 우울, 죄책감 등 복합적인 감정이 뒤따를 수 있다. 애도는 떠나보내는 행위다. 예기치 않게 찾아온 상실의 순간에도 우리는 결국 그 대상을 놓아 주어야만 한다. 장례식은 이러한 떠나보냄의 의식을 치르는 중요한 절차다. 그러나 감정적 애도는 장례식이 끝난 후에도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고인을 잃은 슬픔과 그리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으며, 때로는 평생 동안 남아있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웰다잉은 고인과의 감정적, 공간적 재배치를 요구한다. 감정적 재배치는 상실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는 고인을 마음 속 한 켠에 기억하며, 일상으로의 복귀를 도와주는 중요한 과정이다. 공간적 재배치는 공동의 추모 공간이 아닌, 오롯이 개인만의 공간에서 고인을 기억하고 회상하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 공간은 고인과의 새로운 만남을 가능하게 하며, 남겨진 이들과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공간적 재배치는 고인의 기억이 남은 이들의 삶을 압도하지 않도록 해야 한 다. 이는 평범한 일상으로의 복귀를 돕는 중요한 장치다. 또한, 웰다잉은 단순히 고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겨진 자들의 삶을 위한 상호적인 배려와 추억의 공간 재배치이기도 하다. 

최근 정부는 「장사등에 관한 법률」의 개정 논의와 함께 산분제를 하나의 장법으로 채택하려 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산분제는 공동의 공간에서의 추모를 전제로 하고 있어, 개인만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추모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는 웰다잉의 철학과 상충할 수 있으며, 고인의 기억이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온전히 남아있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또한, 고인을 기억하기 위한 가상의 공간에서의 추모는 실제 상호작용이 결여된 채, 사이버 세계에 갇히게 될 우려가 있다. 이는 현실과의 단절을 초래할 수 있으며, 심리적인 불안정과  우울감을 증폭시킬 위험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산분제와 사이버 추모는 보다 신중한 연구와 접근이 필요하다.